그냥 무작정 페이지를 펼쳤다.
특별히 뭔가에 대해 쓰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. 막연히 뭔가를 써내려가고싶었다.
너무 들떠서 희망찬 미래를 그렸나보다. 순간 좌절된 지금, 앞이 캄캄하고 막막하다.
나만 빼고 다들 한걸음 내딛어 나아가는 것 같다.
나는 제자리에 멈춰선 것 뿐인데도, 뒷걸음질 치는 것만 같다.
신년 다이어리를 사고, 1월의 절반이 지나도록 한 페이지도 쓰지 못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.
2019년이 너무 두렵다.
하고싶은 일은 커녕 해야 할 일 조차 까마득하다.
기분장애가 오면 일상생활이 왜 힘들어지는지, 조금은 알 것 같다.
커피 한 잔 사 먹겠다고 파카를 여미고 추위를 뚫었던 나는 어디로 간걸까.
집 밖으로 나설 이유를 찾을 수 없다.
겨울에도, 외출할 일이 없어도, 머리만큼은 매일 감았었는데, 머리를 감는 빈도 마저 절반 가까이 줄었다.
뭘 해도 흥미가 없고, 하루종일 잠이 쏟아진다.
잠들기 싫지만 집중할 곳이 없으니 눈은 흐리멍덩해지고, 쏟아지는 잠을 이길 도리도 없다.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고.
어딘가에 원망과 분노를 퍼붓고 싶은데 상대는 내 앞에 없다.
가해자가 있지만 실체가 없으니 요동치는 내 감정은 갈 곳을 잃는다.
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드는 가족들 목소리도 듣기 싫다.
해저 깊은 곳에 방 한 칸 둘 수 있다면 거기서 숨죽이고 싶다.
머리는 이게 끝이 아니라고, 지나갈거라고 되뇌여도 마음은 여전하다.
요동치던 감정은 사그라들어 진폭은 줄었지만, 기저선이 한없이 추락해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 속에 남겨진 기분이다.
나는 깊은 터널 속에 있고, 터널 바깥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리는데 제발 닥치라는 내 아우성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터널 속만 맴돈다.
넘실거리던 파도가 사라진, 태평양 어느 가운데 시퍼런 망망대해를 떠도는 듯 하다.
바람도 파도도 새 한마리도 없이 하늘과 바다 사이에 나 홀로 남겨진 기분.
무섭다.